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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아디다스 신발 노동자의 삶과 투쟁[생사고투]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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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5-07-06 00:28 조회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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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노동자의 날, 내가 사회에 발붙인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권미경이 1991년 5월 1일 노동절에 쓴 일기 한 문장이다. 권미경이 태어난 건 1969년 6월 24일이다. 전북 장수에서 나 1971년 부산으로 이주했다. 1982년 2월 아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다음 달 들어간 곳은 중학교가 아니라 보세 공장이다. 열세 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배우려고 했다. 공장 일을 하며 동주여자중학교 야간부를 다녔다. 1985년 졸업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 공장을 계속 다녔다. 1985년 3월~1987년 10월 대일산업, 같은 해 10월~1988년 12월 청산, 1989년 1월~1990년 3월 세원에서 미싱사로 일했다. 그해 6월 대봉 재봉과로 들어갔다. 독일 아디다스 제품을 OEM방식으로 생산·수출하던 회사다.
이듬해 노동은 유달리 고됐다. 1991년 11월 14일자 일기에 쓴 구절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 생활 10년 가까이 해오면서 처음으로 결근계라는 것을 내어보았다. 참으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싶다.”
몸이 괜히 아팠던 게 아니다. 권미경이 열세 살 소녀 노동자로 일한 뒤 처음 결근할 정도로 1991년 하반기 ‘노동 착취’는 고조로 치달았다. 권미경은 10월 11일자 일기에 “몸이 정신을 전혀 뒷받침해 주지를 못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피로 같은 걸 별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요새는 몸이 쑤시고 저리고 하기야 사람이 일을 그렇게 죽어라 하는데 멀쩡하면 어디 사람인가 기계지”라고 썼다. “노동강도가 갈수록 더 심해져 간다. 신발산업 해외이전 문제까지 들먹여가며 아무것도 모르는 내 동료들을 그들은 희롱하고 있다”고도 적었다.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이윤을 챙긴 기업주들은 신발 산업 위기에서 혁신보단, 노동자들을 더 쥐어 짜내는 손쉬운 방식을 택했다. 위기가 일을 덜 해서 생긴 양 몰아붙였다. ‘구사’와 ‘애사’의 이름으로 착취를 강요하고, 정당화했다.
최저임금 수준 정도만 받고 일했다. 최저임금 심의위원회가 1990년 10월 확정한 1991년 최저임금은 월 19만 2790원이다. 10년 차 숙련 노동자 권미경이 1991년 1월 받은 월급은 28만원인데, 연장수당 등을 뺀 기본급은 18만원이다.
전경련 등 당시 경제 5단체는 1991년 11월 22일 “10% 절약 더 하기, 10% 저축 더 하기, 10% 생산성 더 제고하기, 10% 수출 더 증대하기, 자발적으로 일 더 하기” 등 ‘5대 더 하기 운동’을 발표했다. 이들이 주최한 ‘기업체 5대 더 하기 운동 전진대회’에 당시 상공부 차관과 공단이사장도 참석했다. ‘착취의 정경 유착’였다. ‘애사’ ‘구사’에 ‘애국’이 더해졌다.
부산의 여러 공장 사장들은 ‘상여금 반납’, ‘토요일 연장 근무’, ‘30분 더 일하기’를 강요했다. 권미경이 다니던 대봉도 그해 11월 1일부터 목표량 달성을 위해 작업 강도를 올렸다. 11월 말엔 아디다스 새 신발 생산 목표치를 50%가량 늘렸다. 관리자들은 초시계를 가지고 다니며 목표랑 달성을 쪼았다.
권미경은 작업 목표량을 채우지 못해 수 차례 정신 교육을 받았다. 훈시를 듣느라 통근 버스를 타지 못한 적도 여러 번이다. 저녁밥도 챙기지 못해 연장 근로를 하며 잠깐 귤과 빵을 먹다가 간부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했다.
사측은 12월 들어 목표량 달성을 더 재촉했다. 연장 근로도 강요했다. 그달 6일 권미경의 19세 동료가 품질 불량 때문에 질책을 받았다. 조장과 반장이 이 동료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걸 보고 권미경은 울먹이며 “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권미경은 이날 오후 4시8분쯤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4시10분쯤 부산 신평동 대봉 본사 지하식당 앞 공터에서 발견됐다. 고신의료원에 옮겨진 4시24분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그때 권미경 팔뚝엔 검정 볼펜으로 쓴 글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공장 간부들은 권미경을 권공순으로 부르곤 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박공돌’ 등으로 호칭했다.
권미경은 늘 공부했다. ‘광장도서원.’ 1991년 봄 가입한 사하 공단 지역 노동자 독서 모임이다. 권미경은 광장도서원 노동 분과에서 노동 착취 같은 한국 사회 현실 문제를 깨닫는다. 사회, 노동, 여성에 관한 자각, 결의를 일기에 적어 내려갔다.
1991년 5월 6일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녀들만이 지니고 있는 미소가 날이 갈수록 어둡게 변해가는 것 같다. 한창 자연 속에서 꽃사슴처럼 뛰어놀아야 할 소녀들이 여기, 이곳 모든 게 제한되어 있는 작업장에서 노동에 그녀들의 꿈이 시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애처롭다. 내가 그녀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건 당일 질책을 받은 동료 노동자는 야간학교 학생이었다. 자신보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 연민과 동지애를 느꼈다.
사망 하루 전인 12월 5일자 일기엔 “바로 내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고자 할 때만이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해 10월 11일자엔 이렇게 썼다. “우리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싸우다 싸우다 피 터져 죽는 한이 있어도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 그래 짓밟아라! 니네들이 아무리 밟고 억압해도 우린 더욱더 강하게 다시 일어날 테니까.”
여성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 노동 현장에서 깨달은 페미니스트였다. 7월 5일자 일기 제목은 ‘여성행방을 되새기며’다. “진정하고 아름다운 참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한 남성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며 나가고 싶은 한 여성”을 “나 스스로 과감하게 거부한다”고 적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 여성들의 소박한 꿈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지금에 어찌 한 나약한 여성으로 안주해버린단 말인가. 지금의 자본주의 구조가 깡그리 무너지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결단코 나약한 여성이 아니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성으로 또는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똑같은 높이에 평등하게 설 수 있는 그 날까지 힘차게 걸어 나갈 것이다. 노동해방과 여성해방 그날까지.”
권미경은 1남 3녀 중 장녀였다. 열세 살 때 첫 노동을 시작할 때 홀어머니는 완구 공장에 다녔다. 오빠도 어렸을 적부터 노동을 했다. 아버지는 이전 사망한 듯하다. 권미경은 1991년 11월 14일자 일기에 “묵묵히 땀 흘리고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던 울 아버지, 이 사회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마음이 여리고 강하지 못한 울 아버지는 그렇게 쓰러져갔다. 불쌍한 울아버지, 울엄마”라고 적었다. 권미경은 가족의 고난을 “사회에서 소외되고 멸시당하며 살아야 하는 빈민들”의 수난과 이어 생각하려 했다.
비극은 이어졌다. 오빠는 동생의 죽음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93년 3월 11일 부산 천마산 중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산일보는 “동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갔는데 내가 살면 무엇하느냐며 심하게 비관해 왔다”(1993년 3월 12일자)고 전했다
세상은 권미경 죽음 전 공장에서 벌어진 일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았다. 애초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대봉 사측은 권미경의 죽음을 두고 “외부불순세력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매도했다. 대봉의 대표이사는 권미경이 죽기 1주일 전 ‘수출 유공자’로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매일경제는 11월30일자 ‘대봉 올수출 2천만불 초과달성’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신발업체로는 드물게 노사화합, 시장다변화, 신소재개발, 기계 및 공장자동화, 품질고급화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고 적었다. MBC는 사망 다음달인 1992년 1월 초 근로 시간 연장, 토요 휴무제 잠정 폐지 등 부산 신발업계의 ‘일 더하기 운동’을 ‘일하는 풍토’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당시 정부와 언론, 기업이 이윤과 착취의 대연정을 이루었다. 이 대연정은 무너진 적이 없다. 착취와 해고, 죽음에 관한 문제라면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이 죽고, 고공농성을 해도 ‘이윤’ ‘수출’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 관행은 지금껏 이어진다. 때로는 ‘국뽕’과도 연결한다. 파리바게뜨가 프랑스에 빵집을 내면 ‘K-베이커리’로 칭송하듯 말이다.
권미경 장례는 1991년 12월 22일 ‘부산 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경상남도 양산시 솥발산 노동 열사 묘역에 묻혔다. 이듬해 4월 5일 신발 산업 노동자들은 ‘고무노동자협의회’를 결성했다.
권미경의 투쟁은 노동사학자 남화숙의 <체공녀 연대기 1931~2011>(남관숙 옮김, 후마니타스)에도 실렸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인 박정혜는 2일 기준 541일째, 세종호텔 정리해고 노동자 고진수는 140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생사고투’는 대책위가 1991년 12월 10일 낸 낸 ‘고무노동자 권미경 열사 일기 및 관련 자료 모음집’ 등을 참조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전문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기록이 드디어 나왔다.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가 마침내 통산 3000탈삼진 고지를 밟았다.
커쇼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025 메이저리그(MLB) 정규리그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팀이 2-4로 끌려가던 6회초 2사 후 비니 카프라를 상대로 통산 3000번째 탈삼진을 잡아냈다.
커쇼의 3000탈삼진은 MLB 역대 20번째이자, 2021년 9월13일 맥스 슈어저(토론토 블루제이스) 이후 햇수로는 4년만에 나온 기록이다. 또 왼손 투수로는 랜디 존슨(4875개), 스티브 칼튼(4136개), CC 사바시아(3093개)에 이은 4번째다.
커쇼는 이날 6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꽤 고전하긴 했지만 홈에서 그토록 달성하고 싶었던 3000탈삼진을 달성하며 기쁨을 누렸다.
커쇼는 1회초 첫 타자 체이스 메이드로스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출발했다. 이어 오스틴 슬레이터를 볼카운트 1B-2S로 몰아넣었으나 3루타를 얻어맞아 위기에 몰렸다.
위기에서 커쇼는 미겔 바르가스를 볼카운트 2B-2S로 몰아넣은 뒤 한복판에 슬라이더를 던져 3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하지만 앤드루 베닌텐디에게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적시타를 맞아 첫 실점을 내줬다. 이어 에드가 케로를 상대로 땅볼을 유도했으나, 바운드가 너무 커 내야안타가 됐다.
흔들린 커쇼는 레닌 소사를 상대로 볼 2개를 연속으로 던진 후 스트라이크와 파울로 2B-2S를 만들었다. 이어 6구째 커브가 한복판으로 몰렸고, 이를 소사가 제대로 받아쳤으나 담장 앞에서 좌익수 마이클 콘포토가 점핑 캐치로 잡아내 커쇼를 도왔다.
1회말 터진 윌 스미스의 솔로홈런으로 1-1 동점이 된 가운데 2회초 다시 마운드에 오른 커쇼는 첫 타자 마이크 터크먼을 2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이어 마이클 테일러를 2구 만에 좌익수 플라이로 잡았다. 그리고 비니 카프라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앤디 파헤스의 솔로홈런으로 다저스가 2-1로 경기를 뒤집은 가운데 3회초 마운드에 오른 커쇼는 메이드로스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어 첫 타석에서 3루타를 허용했던 슬레이터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투런홈런을 맞았다.
고전하던 커쇼는 바르가스를 상대로 마침내 이날 경기 첫 탈삼진을 잡아냈다. 볼카운트 0B-2S에서 바깥쪽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후 베닌텐디에게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맞고 다시 위기에 몰렸고, 케로에게 다시 적시타를 맞아 실점을 내줬다. 그러나 소사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우익수 플라이 처리하며 한숨을 돌렸고, 터크먼도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간신히 이닝을 마쳤다.
4회초 다시 마운드에 오른 커쇼는 테일러를 상대로 볼카운트 0B-2S의 유리한 고지에서 볼 3개를 연속으로 던져 풀카운트에 몰렸다. 이후 파울 2개가 연속으로 나왔고, 낮게 떨어지는 커브를 던졌으나 테일러가 잘 골라내 볼넷으로 나갔다.
이후 카프라의 희생번트로 1사 2루에 몰린 커쇼는 메이드로스를 3루수 땅볼로 잡아내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직전 타석에서 홈런을 맞았던 슬레이터를 상대로 볼카운트 0B-2S에서 높은 패스트볼로 우익수 플라이 처리하고 이닝을 마쳤다.
5회초 또 마운드에 오른 커쇼는 선두타자 바르가스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이후 베닌텐디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빠르게 아웃카운트 2개를 쌓았지만, 케로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다. 그러나 소사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 3000탈삼진에 1개만을 남겼다.
5회까지 92개의 공을 던진 커쇼는 6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터크먼을 3구 만에 1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하지만 테일러에게 초구 2루타를 허용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테일러가 곧바로 3루 도를 시도했으나 잡히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3루수 맥스 먼시가 부상을 당해 교체되는 악재도 있었다. 이후 커쇼는 카프라를 볼카운트 1B-2S에서 루킹 삼진을 만들어내 위업을 달성했다.
커쇼는 지금 은퇴해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업적을 쌓았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다저스에 입단한 커쇼는 2008년 MLB에 데뷔 후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다. 2010년 첫 두 자릿수 승수와 함께 첫 200이닝-200탈삼진-2점대 평균자책점 시즌을 만들어낸 커쇼는 2011년 21승5패 평균자책점 2.28, 248탈삼진으로 내셔널리그(NL) 트리플크라운을 작성하며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커쇼는 118승41패, 평균자책점 2.36, 1623탈삼진을 기록하며 MLB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이 기간 사이영상을 3번이나 수상했으며, 4연패를 포함해 평균자책점 1위 5번, 탈삼진 1위 3번을 달성했다. 명실상부한 샌디 코팩스 이후 다저스 최고의 왼손 투수다.
하지만 이후 크고 작은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2019년 178.1이닝을 던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규정이닝 시즌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난해 8월3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왼쪽 엄지발가락 부상을 당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11월 발가락과 왼쪽 무릎 수술을 받은 뒤 재활에 매진해왔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인센티브가 850만 달러나 되는 1년 1600만 달러(보장 750만 달러) 계약에 합의한 커쇼는 재활 등판을 거쳐 지난 5월18일 LA 에인절스전을 통해 마운드에 복귀했다. 복귀 후 4경기 연속 승리를 따내지 못했던 커쇼는 6월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 5이닝 7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거뒀고, 이후 내리 4연승을 내달렸다. 그리고 이날 그토록 고대했던 3000탈삼진 고지를 밟으면서 커리어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다저스 타자들은 ‘전설’을 위해 힘을 냈다. 8회까지 2-4로 끌려가며 커쇼에게 패전의 멍에를 안기는 듯 했지만, 9회말 무사 만루에서 오타니 쇼헤이의 2루수 땅볼과 무키 베츠의 희생플라이, 그리고 프레디 프리먼의 끝내기 안타로 5-4 역전승을 거두고 커쇼의 패전을 지웠다.
이날 9번·2루수로 선발 출전한 ‘혜성특급’ 김혜성은 3타수1안타 1볼넷 1도루로 ‘멀티출루’를 작성하며 힘을 냈다. 2회말 2사 1루에서 맞은 첫 타석에서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난 김혜성은 5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는 3루수 옆 내야안타로 출루에 성공했다. 이후 2루 도루를 감행, 성공시키며 1사 2루 찬스를 이었다. 김혜성의 시즌 8호 도루로, 김혜성은 아직 도루 실패가 없다. 다만 후속 타자들인 오타니와 베츠가 범타에 그쳐 홈을 밟지는 못했다.
7회말 무사 1루에서 맞은 네 번째 타석에서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난 김혜성은 9회말 무사 1·2루에서 맞은 마지막 타석에서는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하며 무사 만루 찬스를 이어 팀의 끝내기 승리에 발판을 놨다. 김혜성의 타율은 0.368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을 맞은 3일 첫 기자회견에서 “부산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부산은 해양수산부가 있기에 적정한 지역”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충청 지역은 그래도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한다. 남방 한계선을 완전히 벗어난 남도 지역들, 호남·영남과 강원, 경북 이런 데 보다 (상황이) 낫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균형발전을 하기 위해 수도권 공공기관을 대전과 세종, 충남으로 집중 이전했는데, 더 어려운 지역으로 해수부 하나 이전하는 것”이라며 “대전과 세종, 충남이 행정수도·공공기관 이전 혜택을 받으면서 더 어려운 지역에 (해수부) 한 곳 옮기는 것을 가지고 ‘내가 다 가질 거야’라고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해수부 부산 이전에 반대입장을 밝혀온 최민호 세종시장은 이틀째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최 시장은 지난 2일부터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앞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인 시위는 4일까지 이어진다.
최 시장은 지난 1일 열린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해수부 이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으로, 전재수 해수부 장관 내정자와의 공개토론을 제안한다”며 “해수부 이전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때에도 검토한 바 있지만 세종에 그대로 위치하게 됐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국토 균형발전과 국정 운영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내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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